2025년 12월 말, 세계 최대 회계사 단체인 ACCA(Association of Chartered Certified Accountants)는 2026년 3월부터 원격(온라인) 시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부정행위 시스템의 정교함이,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안전장치의 속도를 추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발언은 온라인 시험 운영기관이 ‘기술’로 더 이상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단순히 “AI 때문에 컨닝이 늘었다” 정도로 이해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컨닝페이퍼가 디지털로 바뀐 정도가 아닙니다. AI는 이미 답을 훔치는 도구가 아니라, 시험장 밖에서 사고를 대신 수행하는 ‘원격 두뇌(remote brain)’가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시험이 흔들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시험이 확산되던 시기(2020~2021): ‘감독 기술’의 낙관
원격 시험은 팬데믹 기간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웹캠, 화면 녹화, 시선 추적, 프로그램 실행 제한 같은 원격 감독(proctoring) 기술이 뒤따랐고, 많은 기관은 “감독을 강화하면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때의 부정행위는 대체로 자료를 몰래 보거나, 주변 도움을 받는 식의 ‘전통적 컨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한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시험을 보는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면, 그 사람의 ‘사고’도 대체로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그 전제가 무너집니다.
생성형 AI 대중화 이후(2022~2023): ‘정보 검색’에서 ‘사고 외주’로
생성형 AI가 퍼지면서 부정행위는 질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전에는 “정답을 어디서 가져오느냐”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사고 자체를 어디서 하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문제를 사진으로 찍거나 텍스트로 옮겨 AI에게 던지면, AI는 이해·추론·정리·답안 작성까지 한 번에 수행합니다. 시험 응시자는 점점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답을 전달하는 인터페이스가 됩니다.
이 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감독 기술이 감시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AI가 수행하는 사고는 시험장 밖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즉, 온라인 시험의 취약점은 기술의 성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입니다.
“AI 원격 두뇌”가 현실이 된 순간(2024): 튀르키예 대학입학시험 사건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24년 6월 튀르키예에서 발생했습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대학입학시험(YKS)에서 한 수험생이 초소형 장비를 이용해 문제를 외부로 전송하고, AI 소프트웨어로 풀이한 답을 실시간으로 받으려다 적발돼 체포·구금되었습니다. 보도 내용에는 단추형 카메라(셔츠 버튼처럼 위장), 휴대폰, 라우터, 이어피스 등으로 연결된 ‘조합형 장치’가 등장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부정행위를 했다”가 아닙니다. 시험장 안에서 벌어진 것은 촬영과 전송 정도였고, 진짜 시험(이해와 추론)은 시험장 밖에서 AI가 수행했습니다. 다시 말해, AI가 ‘컨닝페이퍼’가 아니라 ‘원격 두뇌’로 작동한 사건입니다. 이 모델은 온라인 시험뿐 아니라 오프라인 시험까지 동시에 위협합니다. 시험장이 물리적으로 단단해도, 사람의 몸이 네트워크의 입구가 되는 순간 AI는 시험장에 ‘접속’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유사 흐름의 확산(2025): ‘장치+공모+조직’이 시험을 잠식
2025년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초소형 장치와 외부 공모”를 결합한 부정행위 보도가 반복됩니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채용시험이나 경찰·철도 등 각종 시험에서 블루투스 이어피스 같은 장치를 이용한 부정행위 적발 사례가 계속 보도됩니다. 사건마다 AI의 사용 여부는 다르지만, 구조는 동일합니다. 문제를 밖으로 빼내고(또는 듣고), 밖에서 풀이한 답을 다시 들여보내는 방식입니다. 결국 외부 풀이자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AI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험의 ‘사고 기능’이 이미 시험장 밖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또한 2025년 여름 일본에서는 TOEIC 시험을 둘러싼 대리응시·조직적 부정행위 수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리응시 혐의로 체포된 인물이 있었고, 관련해 다수 응시자가 시험장 이탈을 하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는 내용도 전해졌습니다. 이 사례 역시 온라인 시험이 아니더라도 “인증(credential) 시장”이 커질수록 시험 부정이 조직화된다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왜 ACCA는 ‘온라인 시험 중단’까지 갔을까
이런 흐름이 누적된 끝에, ACCA의 결정은 단지 한 단체의 운영 변경이 아니라 ‘원격 시험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으로 읽힙니다. ACCA는 팬데믹 기간 원격 감독 시험을 도입했지만, AI 기반 부정행위가 안전장치의 진화를 앞질렀고, 위험이 “티핑 포인트”를 넘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ACCA가 동시에 자격 체계를 개편하면서 AI, 블록체인, 데이터 사이언스 같은 내용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점입니다. 즉, AI는 시험을 망가뜨리는 ‘적’인 동시에, 회계·감사 직무 자체를 바꾸는 ‘필수 역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AI를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로 이동합니다.
결론: 온라인 시험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시험의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전통적 시험은 ‘개인이 혼자 사고한다’는 전제를 깔고 설계됩니다. 그러나 AI가 원격 두뇌가 되는 순간, 그 전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감독 기술을 아무리 강화해도, 시험장 밖에서 일어나는 사고 과정을 감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ACCA의 결정을 “온라인 시험이 위험하다”가 아니라, “AI 시대에는 시험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선택지는 두 갈래로 좁혀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는 고위험(고신뢰) 자격시험에서 오프라인 회귀를 강화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AI 사용을 전제로 평가를 재설계하는 길입니다. 예컨대, 단순 정답 도출이 아니라 문제 정의, 판단 근거, 과정 기록, 책임성, 그리고 AI를 어떤 기준으로 활용했는지까지 묻는 방식입니다. “AI를 쓰지 마라”가 아니라 “AI를 쓰되, 당신의 판단은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AI는 이미 컨닝페이퍼가 아닙니다. 시험장 밖에서 조용히 사고하고, 시험장 안의 인간은 그 사고를 전달하는 단말이 됩니다. ‘온라인 시험의 위기’는 감독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지능의 경계가 바뀌는 시대에 시험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Bastian, M. (2025, December 29). AI fraud forces world’s largest accounting body to end online exams. The Decoder. https://the-decoder.com/ai-fraud-forces-worlds-largest-accounting-body-to-end-online-exams/
Financial Times. (2025, December 28). Accounting body scraps remote exams as AI cheating rises. https://www.ft.com/
Reuters. (2024, June 9). Turkey detains student accused of using AI to cheat in university entrance exam. https://www.reuters.com/world/middle-east/turkey-detains-student-accused-using-ai-cheat-university-entrance-exam-2024-06-09/
Guardian. (2025, December 29). UK accounting body to halt remote exams amid AI cheating fears.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5/dec/29/uk-accounting-remote-exams-ai-cheating-acca
City A.M. (2025, December 30). Accountancy body reverts to in-person exams over AI cheating fears. https://www.cityam.com/accountancy-body-reverts-to-in-person-exams-over-ai-cheating-fears/
Times of India. (2025). Bluetooth devices used in recruitment exam cheating racket busted. https://timesofindia.indi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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