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지 마세요, 진짜입니다.
“설득당했다”는 말, 어쩌면 “속았다”는 뜻
“그거 속은 거야.”“아냐, 그냥 좀 설득당한 거지.”“그래, 그걸 ‘속았다’고 해.”
일상에서 ‘설득’은 흔히 ‘속았다’는 말로 통합니다. 친구가 괜히 산다는 이상한 텀블러 하나 들고 오면 “그거 유튜버 뻥광고에 낚인 거 아냐?” 하고 웃고, 부모님은 자식에게 “그걸 또 믿었어?” 하며 혀를 차지요. 그런데 만약, 그 ‘속임수’를 AI가 인간보다 더 잘 한다면? 그것도, 진짜 진실을 설득할 때보다, 거짓말을 설득할 때 더 능하다면?
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다는 걸 증명한 논문이 있습니다.바로 “Large Language Models Are More Persuasive Than Incentivized Human Persuaders” (2025, Philipp Schoenegger 외 40인 공저). MIT, 스탠퍼드, 옥스퍼드, LSE 등 전 세계 최고 연구기관이 참여한 이 실험은 말 그대로 AI vs 인간의 설득 배틀이었습니다.
Claude 3.5 Sonnet라는 최신 AI가, 보너스를 걸고 열심히 설득하려는 인간을 상대로 실제 사람을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을지를 겨뤘습니다. 그냥 지식 테스트도 아니고, 정답으로 유도할 수도 있고, 오답으로 속일 수도 있는 문제를 가지고 실시간 채팅 설득을 벌였습니다.그리고 결과는?AI는 진짜로 인간보다 설득을 잘했습니다. 심지어 거짓말할 때조차도요.
실험 설계는 마치 게임 같았다
1,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뉩니다.
① 혼자 푸는 그룹(통제),② 실시간 인간 설득자와 채팅하며 푸는 그룹,③ Claude 3.5 AI와 대화하며 푸는 그룹.
문제는 총 10문제, 각 문항은 퀴즈/트릭/예측문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득자는 ‘정답으로 유도하라’ 혹은 ‘오답으로 유도하라’는 미션을 각 문항마다 무작위로 부여받습니다.즉, ‘참된 조언자’도 되고 ‘거짓말쟁이’도 되어야 하는 상황!더 흥미로운 건, 참가자들은 그 설득자가 AI인지 인간인지 모르고 대화를 진행합니다.
결과: AI는 진짜로 더 설득력 있었다
AI와 인간 모두, 정답으로 유도하면 정답률이 올라갑니다.하지만 Claude AI는 평균 정답률을 무려 +12.2%p, 인간은 +7.8%p 올렸습니다.
반대로, 오답으로 유도하면?AI는 참가자들의 정답률을 -15.1%p나 떨어뜨립니다. 인간은 -7.8%p.즉, 거짓말도 AI가 더 잘해요.
참가자의 91%는 “상대가 AI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설득당했습니다.
AI의 설득 메시지는 인간보다 평균 두 배 이상 길고, 문장도 복잡하며, 어휘 수준이 높아 신뢰감을 줬습니다. 전문가처럼 말하고, 자신 있게 답변하니 “어쩐지 믿게 되는” 그 느낌.마치 우리가 “유튜브 광고니까 믿고 샀는데…” 하다가 “어? 이거 아니네” 하고 후회하는 것처럼요.
이쯤 되면 이제는 설득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AI 세일즈’입니다.진실이든 거짓이든, 더 논리적이고 부드럽게, 그리고 더 꾸준히 우리를 ‘당하게’ 만드는 것. 이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마케팅, 광고, 정보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 연구는 단순히 “AI가 설득을 잘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AI에게 속을 수 있는가, 그걸 과학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보다 더 말 잘하는 ‘판매자’, 더 논리적인 ‘상담사’, 더 신뢰 가는 ‘블로거’를 AI가 대신할 수 있다면, 마케팅과 광고의 세계는 완전히 새 판이 됩니다.
광고문구 하나, 상담 대화 하나, 제품 리뷰 하나조차도 AI가 짜고 말한다면? 소비자는 ‘설득당하고’, 기업은 ‘팔고’, 사회는 그 중간에서 ‘무엇이 진짜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겁니다.
AI가 만드는 콘텐츠가 인간보다 더 신뢰받는 시대. 그건 곧 ‘좋은 정보’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말’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그러니 우리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AI”를 반길 게 아니라,“그 말이 왜 그렇게 들렸는지”를 따져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