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 산업을 뒤흔든 충격의 한 주
12월 중순, 미국 하드웨어 업계는 충격적인 뉴스로 떠들썩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세 개의 주요 기업이 잇따라 파산 신청을 했다. 룸바(Roomba)로 유명한 이로봇(iRobot), 자율주행차 핵심 센서를 만드는 루미나 테크놀로지스(Luminar Technologies), 그리고 전기자전거 제조업체 래드파워 바이크(Rad Power Bikes). 이 세 기업은 각각 로봇 청소기, 라이다(LiDAR) 센서, 전기자전거 분야에서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동반 추락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현대 하드웨어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 이로봇: MIT에서 시작된 로봇 청소기의 꿈이 중국 기업에 넘어가다
룸바가 걸어온 35년의 여정
1990년 MIT의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와 그의 제자들인 콜린 앵글, 헬렌 그라이너가 설립한 이로봇은 초기에는 국방 및 우주 분야 작업에 집중했다가 2002년 룸바 로봇 청소기를 선보이며 즉각적인 성공을 거뒀다. 룸바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고양이를 태우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룸바의 영상은 인터넷 밈이 되었고, “룸바로 청소하다”는 표현은 동사처럼 쓰였다. 회사는 총 5천만 대 이상의 로봇을 판매하며 미국 시장점유율 42%, 일본 시장점유율 65%를 차지했다.
아마존 인수 무산이 가져온 나비효과
하지만 이로봇의 운명을 가른 것은 아마존과의 인수 협상 실패였다. 아마존은 2022년 이로봇을 17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2024년 1월 유럽연합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규제 우려로 거래가 무산되었다. 아마존은 9천4백만 달러의 위약금을 지불하고 떠났고, 이로봇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이후 이로봇은 직원 31%를 해고했고, 창립자 콜린 앵글이 CEO 직에서 물러났다.
중국 기업에 넘어간 미국의 로봇 기술
2024년 이로봇의 총 매출은 6억8천2백만 달러였지만, 중국 경쟁사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이 침식되었다. 특히 에코박스(Ecovacs) 같은 중국 기업들은 더 저렴한 가격에 기술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이로봇은 대부분의 제품을 베트남에서 생산했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46% 관세로 2025년 비용이 2천3백만 달러 증가했다. 파산 신청 당시 이로봇은 미국 세관에 340만 달러의 미납 관세를 포함해 총 1억9천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결국 이로봇은 주요 공급업체이자 채권자인 중국 선전의 피시아 로보틱스(Shenzhen Picea Robotics)에 인수되었다. 2021년 팬데믹 수요로 35억6천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회사는 현재 1억4천만 달러 수준으로 평가된다. 35년간 미국 로봇 산업을 이끌던 기업이 결국 중국 기업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2. 루미나: 30억 달러 꿈이 사라진 라이다 센서의 비극
자율주행의 ‘눈’이 되려던 야심찬 도전
루미나는 2020년 역합병을 통해 상장할 당시 3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라이다(LiDAR)는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하는 센서로,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이다. 루미나는 창립자 오스틴 러셀의 천재성과 볼보,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거대 자동차 회사들과의 계약으로 미래가 밝아 보였다. 테슬라조차 2024년 1분기 매출의 10% 이상을 루미나에 지출할 정도였다.
볼보와의 결별이 가져온 파국
하지만 모든 것이 틀어졌다. 2024년 5월 루미나는 직원 20%를 해고했고, 9월에는 볼보가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볼보는 EX90 차량에 라이다를 표준이 아닌 선택사양으로 변경하고, 향후 차량에는 아예 탑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예상 주문량이 90% 감소했다. 루미나는 이를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10월 센서 공급을 중단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2024년 11월 루미나가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창립자의 윤리 문제와 반도체 자회사 매각
2025년 5월, 창립자 오스틴 러셀은 “사업 행동 및 윤리 강령” 조사 후 갑작스럽게 CEO직을 사임했다. 그는 이후 Russell AI Labs를 설립하고 루미나를 다시 사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루미나는 3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1% 증가한 1천8백70만 달러였지만, 운영비용 6천6백60만 달러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12월 15일 파산 신청 당시 루미나의 자산은 1억~5억 달러, 부채는 5억~10억 달러로 추정되며, 반도체 자회사는 퀀텀 컴퓨팅에 1억1천만 달러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자율주행의 미래를 이끌 것처럼 보였던 기업은 결국 법원 감독 하의 자산 매각 절차로 끝을 맞이하고 있다.
3. 래드파워 바이크: 16억5천만 달러 유니콘에서 7천3백만 달러 부채로
팬데믹이 만든 전기자전거 신화
2007년 캘리포니아 훔볼트 주립대학에서 만난 마이크 라덴바우와 타이 콜린스가 함께 만든 첫 전기자전거에서 시작된 래드파워 바이크는 2015년 본격적인 직접판매 브랜드로 출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회사에게 전례 없는 기회였다. 대중교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전기자전거로 몰려들었다. 2020년 2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3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고, 2021년 회사 가치는 16억5천만 달러로 평가되며 북미 최대 전기자전거 판매업체가 되었다.
수요 급감과 배터리 안전 논란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매출은 2021년 3억1천8백만 달러에서 2022년 1억6천9백만 달러, 2023년 9천3백만 달러로 추락했고, 2024년에는 5천5백만 달러로 예상된다. 2024년 매출 1억3백80만 달러에서 2025년 12월 15일까지 6천3백30만 달러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11월 24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래드파워의 일부 리튬이온 배터리가 물과 이물질에 노출되면 예기치 않게 발화하고 폭발할 수 있다며 즉시 사용 중단을 경고했다. 래드파워는 이 판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CPSC는 회사가 교체 배터리나 환불을 제공할 수 없어 “적절한 리콜”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세가 준 최후의 일격
파산 신청 당시 래드파워는 3천2백10만 달러의 자산에 7천2백80만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이 중 8백36만 달러는 미국 세관에 납부하지 못한 관세였다. 회사는 이 청구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전기스케이트보드 업체 Boosted를 무너뜨린 것처럼 래드파워에게도 치명타가 되었다. 창립자 마이크 라덴바우는 여전히 41% 이상의 최대 주주지만, 회사는 45~60일 내 매각을 목표로 구매자를 찾고 있다.
세 기업이 말하는 하드웨어 산업의 공통 위기
1. 관세와 공급망 위기가 만든 완벽한 폭풍
세 기업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로봇은 베트남 생산으로 46% 관세를, 래드파워는 중국과 태국에서 수입하는 부품에 관세를 부담했다. 하드웨어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지만, 급변하는 무역 정책은 기업들의 원가 구조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이로봇은 340만 달러, 래드파워는 840만 달러의 미납 관세를 안고 파산했다.
2. 기술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용화의 벽
루미나는 라이다 기술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되면서 주요 고객들이 이탈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이 준비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루미나의 분기 운영비용 6천6백만 달러는 매출 1천8백만 달러를 훨씬 초과했다. 혁신과 수익 사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3. 중국 경쟁사의 거센 도전
세 기업 모두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시달렸다. 이로봇은 에코박스에, 루미나는 중국 라이다 제조사들에, 래드파워는 저렴한 중국산 전기자전거에 시장을 잠식당했다. 중국 기업들은 단순히 가격만 낮춘 것이 아니라 기술력까지 빠르게 따라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로봇을 인수한 것도 중국 기업 피시아 로보틱스였다.
4. 팬데믹 특수의 덫
래드파워와 이로봇 모두 팬데믹 시기 폭발적 수요를 경험했다. 이로봇은 2021년 35억 달러, 래드파워는 16억5천만 달러로 가치가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었다. 정상화 이후 급감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과도한 재고와 인력을 안게 되었다. 팬데믹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하드웨어 산업의 미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전략
유연성과 적응력이 핵심
세 기업의 파산은 현대 하드웨어 산업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기술 혁신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급변하는 무역 환경, 공급망 위기, 규제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수다. 공급망 다변화, 지역별 생산 거점 구축, 관세 리스크 관리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AI와 데이터가 여는 새로운 기회
하드웨어 산업의 미래는 단순 제조를 넘어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스마트 제품으로 향하고 있다. 이로봇의 룸바가 집안을 매핑하고 학습하듯, 하드웨어는 점점 더 지능화되고 서비스화될 것이다. 구독 모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데이터 분석 서비스 등 새로운 수익원을 개척해야 한다.
ESG와 지속가능성이 차별화 요소로
환경 규제 강화와 소비자 인식 변화는 ESG 경영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고 있다. 래드파워가 직면한 배터리 안전 문제처럼, 제품 안전과 환경 책임은 브랜드 가치의 핵심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제조 프로세스, 재활용 가능한 설계, 투명한 공급망 관리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결론: 변화의 시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통
이로봇, 루미나, 래드파워의 파산은 단순한 실패 사례가 아니라 하드웨어 산업 전체의 구조 조정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35년, 5년, 18년의 역사를 가진 이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했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챕터11 파산보호 절차를 통해 이들은 새로운 주인 아래 재탄생할 기회를 얻었다. 룸바는 여전히 작동할 것이고, 전기자전거는 계속 달릴 것이며, 라이다 기술은 누군가의 손에서 발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에서 배우는 것이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첩성, 적응력, 그리고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드웨어 산업의 다음 챕터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이번 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기업이 될 것이다.
참고
Ackerman, E. (2025, December 17). Why iRobot’s bankruptcy was no surprise to co-founder Colin Angle. IEEE Spectrum. https://spectrum.ieee.org/irobot-bankruptcy-colin-angle-amazon
Coldewey, D. (2025, December 14). How iRobot lost its way home. TechCrunch. https://techcrunch.com/2025/12/14/how-irobot-lost-its-way-home/
Demaitre, E. (2024, November 25). iRobot debt acquired by contract manufacturer as bankruptcy looms. The Robot Report. https://www.therobotreport.com/irobot-debt-acquired-by-contract-manufacturer-as-bankruptcy-looms/
iRobot files for bankruptcy protection; will be private under restructuring. (2025, December 15). ABC News. https://abcnews.go.com/Business/wireStory/roomba-maker-irobot-files-bankruptcy-protection-private-restructuring-128411370
Khan, A. A. (2025, December 16). iRobot (IRBT) goes bankrupt less than 2 years after Amazon abandoned acquisition due to regulators. Shacknews. https://www.shacknews.com/article/147198/irobot-irbt-bankrupt-failed-amazon-deal
Kolodny, L. (2025, December 15). Former iRobot CEO calls Roomba maker’s bankruptcy ‘a tragedy for consumers’. CNBC. https://www.cnbc.com/2025/12/15/former-irobot-ceo-calls-roomba-makers-bankruptcy-a-tragedy.html
Porter, J. (2025, December 16). iRobot just filed for bankruptcy: Here’s what happens to your Roomba now. Android Authority. https://www.androidauthority.com/irobot-roomba-bankruptcy-3625239/
Rossignol, J. (2025, December 16). iRobot files for Chapter 11 bankruptcy after increased competition & tariff woes. AppleInsider. https://appleinsider.com/articles/25/12/15/irobot-files-for-chapter-11-bankruptcy-after-increased-competition-tariff-woes
Cheney, C. (2025, December 17). Seattle e-bike pioneer Rad Power Bikes files bankruptcy, owes $73 million. The Spokesman-Review. https://www.spokesman.com/stories/2025/dec/18/seattle-e-bike-pioneer-rad-power-bikes-files-bankr/
AI FOCUS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