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가 AI를 써봤다는데, 토종 AI는 어디 있나요?
“루이 아니고 리 아니고, 뤼튼!”
2025년 6월, 지하철을 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광고입니다. 지드래곤이 스마트폰을 들고 직접 찍은 듯한 세로 영상, 흔들리는 화면, 특별한 BGM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광고. “이거 AI 광고야”라는 한 문장만 남기고 끝나는 이 이상한 광고는,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기묘하게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소비자 74%가 AI 서비스를 써봤다고 합니다. 평균 2.2개의 서비스를 사용하고, 72%는 주 1회 이상 사용한다고 합니다. 숫자만 보면 AI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 하나. 그 74% 중 몇 명이나 한국 AI를 써봤을까요?
숫자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챗GPT 54%, 토종 AI는…
컨슈머인사이트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옵니다.
챗GPT: 54% – 압도적 1위입니다. 2명 중 1명이 챗GPT를 써봤다는 뜻입니다. 상반기 대비 7%p나 증가했습니다.
제미나이: 30% – 구글의 AI입니다. 6개월 만에 이용경험률이 15%에서 30%로 2배 뛰었습니다. 무서운 추격입니다.
에이닷: 17% – SK텔레콤의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상반기 대비 1%p 감소했습니다.
뤼튼: 13% – 국내 스타트업입니다. 상반기 대비 6%p 증가했습니다.
클로바노트: 10% – 네이버의 서비스입니다.
수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챗GPT 혼자 54%를 차지하고, 토종 AI 3개를 다 합쳐도 겨우 40%입니다. 그것도 중복 사용자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30%도 안 될 겁니다.
챗GPT는 여전히 왕입니다. 하지만 왕좌 아래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토종 AI는 밀리고 있습니다.
뤼튼의 역습: 저관여 제품 전략의 승리
그런데 이 불리한 싸움에서, 뤼튼이라는 작은 스타트업이 묘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바로 그 이상한 광고입니다.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고를 광고처럼 연출하지 않는 전례 없는 방식을 통해, 정보가 아닌 신선한 경험으로서 뤼튼을 각인시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기능 설명? 없습니다. 기술 자랑? 없습니다. 멋진 CG? 없습니다. 그냥 지드래곤이 스마트폰 들고 “이거 AI 광고야”라고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이건 전형적인 ‘저관여 제품’ 마케팅입니다. 과자 광고 생각해보세요. 성분 표시하나요? 제조 공정 설명하나요? 아닙니다. 그냥 맛있어 보이고, 먹고 싶게 만들면 됩니다. 뤼튼은 AI를 과자처럼 팔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먹혔습니다.
광고 캠페인 론칭 이후 몇 주 만에, 뤼튼의 일 평균 앱 설치는 57%, 회원가입은 44%나 증가했습니다. 7월 3주차 기준으로 뤼튼의 앱 설치 건수는 8만2969건으로 챗GPT(29만759건)에 이어 AI 앱 부문 2위에 올랐습니다. 제미나이와 퍼플렉시티를 제쳤습니다.
신규 설치자 중 10대가 31.2%, 20대가 21.1%를 차지했습니다. 젊은 세대가 반응한 겁니다. “이게 뭐야?”라는 당황스러운 반응도 많았지만, 일단 기억에 남았고, 호기심을 유발했고, 앱을 깔아봤습니다.
뤼튼은 AI를 저관여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편리함을, 성능이 아니라 익숙함을 팔았습니다.
뤼튼의 진짜 전략: 플랫폼이 되기로 한 선택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뤼튼은 자체 AI 모델이 없습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습니다. SK텔레콤도 자체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뤼튼은 다릅니다. 뤼튼은 **GPT-4o, Claude, DeepSeek 등 여러 AI 모델을 한곳에 모아놓은 ‘슈퍼앱’**입니다.
자체 개발 대신 플랫폼 전략을 택한 겁니다. 그리고 이게 오히려 강점이 됐습니다.
첫째, 무료 무제한 사용입니다. 챗GPT는 무료 버전이 제한적입니다. 뤼튼은 GPT-4o를 포함한 여러 모델을 무료로 쓸 수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둘째, RAG(검색증강생성) 기술로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실시간 웹 검색과 결합해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셋째, 한국어 최적화입니다. 글로벌 AI들이 한국어를 지원하긴 하지만, 한국 문화와 맥락까지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뤼튼은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넷째, 해외 진출입니다. 뤼튼은 현재 월 1,500만 방문자를 기록하며 일본, 중동, 동남아로 확장 중입니다. 자체 모델 없이도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뤼튼의 전략은 명확합니다. “기술 경쟁이 아니라 접근성 경쟁이다.”
제미나이의 조용한 위협: 6개월 만에 2배
한편, 정말 무서운 건 제미나이입니다.
6개월 전만 해도 제미나이의 이용경험률은 15%였습니다. 지금은 30%입니다. 반년 만에 2배가 됐습니다. 이 속도라면 조만간 챗GPT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제미나이의 강점은 구글 생태계입니다. Gmail을 쓰다가, Google Docs를 작성하다가, YouTube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제미나이를 만납니다. 별도로 앱을 깔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구글 계정이 있으니까요.
무료 버전도 강력합니다. 멀티모달 기능(이미지, 동영상 분석)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구글 검색과 통합돼 최신 정보에 강합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6개월만에 2배 성장한 제미나이의 약진… 시장 판도 변화는 시간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제미나이는 조용히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챗GPT를 위협할 유일한 후보입니다.
에이닷과 클로바X의 고민: 강점을 어떻게 살릴까
그렇다면 다른 토종 AI들은 어떨까요?
**에이닷(SK텔레콤)**은 통신사 인프라가 강점입니다. 5G 네트워크, 빅데이터, B2B 고객 기반. 분명 잠재력은 있습니다. 하지만 상반기 대비 1%p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차별화입니다. “통신사가 만든 AI”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비자는 묻습니다. “그래서, 챗GPT와 뭐가 달라요?”
**클로바X(네이버)**는 더 복잡합니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하이퍼클로바X로 한국어 벤치마크에서 GPT-3.5와 제미나이 프로를 이겼습니다. 기술력은 증명됐습니다. 하지만 이용경험률은 10% 미만입니다.
왜일까요? 소비자 마케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처음부터 B2C보다 B2B에 집중했습니다. 네이버 쇼핑, 네이버 검색, CLOVA Studio 같은 기업용 서비스에 하이퍼클로바X를 접목했습니다. 전략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클로바X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토종 AI들은 각자의 강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강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토종 AI의 진짜 싸움: 챗GPT를 이기는 게 아니라
여기서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종 AI가 챗GPT를 이길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어렵습니다. OpenAI는 이미 너무 앞서갔습니다. 브랜드 인지도, 기술력, 자본, 생태계 모든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이길 필요가 있을까요?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챗GPT가 못하는 걸 우리는 할 수 있는가?”
뤼튼이 보여준 것처럼, 플랫폼 전략으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무료 무제한, 한국어 최적화, 여러 모델을 한곳에서. 이건 OpenAI가 제공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에이닷이라면, 통신 인프라를 활용한 기업용 AI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보안이 중요한 금융, 의료, 공공 분야. 여기서는 글로벌 AI보다 국내 규제를 잘 아는 AI가 유리합니다.
클로바X라면, 네이버 생태계 통합이 무기입니다. 검색, 쇼핑, 블로그, 카페. 이 모든 데이터와 연결된 AI. 챗GPT는 네이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신뢰와 특화의 경쟁입니다. 챗GPT를 이기는 게 아니라 챗GPT가 못하는 걸 하는 것입니다.
글로벌 vs 로컬: 한국 AI 생태계의 두 갈래 길
토종 AI의 미래는 두 갈래입니다.
첫 번째 길: 글로벌 범용 AI. 뤼튼처럼 플랫폼이 돼서 전 세계로 나가는 겁니다. 이미 뤼튼은 월 1,500만 방문자 중 상당수가 해외 사용자입니다. 일본은 한자 문화권이라 유사성이 있고, 중동은 영어권 시장이지만 AI 인프라가 부족해 기회가 있습니다.
두 번째 길: 로컬 특화 AI.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 법률, 한국 데이터에 집중하는 겁니다. 교육, 법률, 의료, 금융처럼 로컬 맥락이 중요한 분야. 여기서는 토종 AI가 오히려 유리합니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AI 3강 국가를 목표로 100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AI 50 기업 육성 정책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양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필요한 건 차별화된 경쟁력입니다.
한국 AI가 가진 강점은 분명합니다:
- 한국어 이해도: 문화, 맥락, 뉘앙스
- 로컬 데이터: 한국 법률, 규정, 관습
- 빠른 대응: 고객 피드백 즉각 반영
- 규제 대응: 개인정보보호법, AI 윤리 기준
이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것이 토종 AI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74%는 시작일 뿐이다
한국인의 74%가 AI를 써봤습니다. 인상적인 숫자입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챗GPT 54%, 토종 AI 전부 합쳐 30%입니다.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그런데 뤼튼의 성공이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전략과 실행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체 모델 없이도, 광고 하나로 앱 설치 57% 증가, 7월에는 제미나이를 제치고 2위. 작은 스타트업이 해낸 일입니다.
제미나이의 추격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6개월 만에 2배 성장. 생태계의 힘입니다. 네이버, SK텔레콤도 생태계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걸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토종 AI의 선택지는 명확합니다:
- 글로벌 범용 vs 로컬 특화
- B2C 대중화 vs B2B 전문화
- 기술 개발 vs 플랫폼 전략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강점에 맞는 길을 가면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74%가 AI를 써봤습니다. 하지만 그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국 AI를 써봤을까요? 토종 AI의 진짜 싸움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를 얻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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